한국야구, 그 첫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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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보자 한국야구」 블로그 대망의 첫 포스트는 한국야구의 첫 시작에 대한 이야기다.
살짝 따분할 수 있는 역사에 관한 이야기지만 뭐든지 한국야구의 탄생 배경과 역사를 알고나면 그것이 배로 재밌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대한체육사에서는 “1901년 YMCA 개척간사로 한국에 파송된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P.Gillett)는 1903년 황성기독청년회(YMCA)를 설립했고 1905년에는 청년회 회원들에게 서양식 공놀이인 야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한국에는 1905년 당시 선교사로 온 미국인 질레트(P.Gillett)가 황성기독청년회(현재의 YMCA)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이 형씨 시초이다. 한국보다 야구의 보급이 빨랐던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 당시에 야구라는 스포츠가 들어오긴 했지만 정식으로 한국만의 야구가 시작된 것은 1905년이라고 할 요체 있다.
야구의 도입이후 1906년 2월 11일 황성기독청년회와 덕어(독일어)학교 사이에 최초의 야구경기가 열렸고 후 서울의 보성고등학교•오성학 교•경신학교•배재학당 등 여러 야구팀이 조직되었다.
초창기에 밭주인 주목할 만한 일은 1922년 12월 8일 미국 메이저리그의 프로야구단 초청이었다. 철도구장에서 전조선군과 경기를 가졌는데, 결과는 21:3으로 크게 패하였다.
1923년 5월 23일 조선야구협회가 창립되어, 한국 야구가 그제야 본궤도에 올랐으며, 같은해 7월에는 하와이 동포 야구단이 고국을 찾아 여러 차례의 경기를 가졌다. 연수구 유소년야구
그 나중 야구는 발전을 거듭했으나 1938년 일본에 의해 조선체육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경기가 중단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게 있다. 금방 우리나라 대표팀과 일본의 경기력은 원체 비슷하고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는 일본을 꺾고 우리나라가 당당히 금메달을 얻었는데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일본의 수준은 어땠을까?
기록에 따르면 전반적인 수준은 일본에 뒤졌지만 주력 선수의 능력은 밑 야구 선수에 뒤지지 않았다고 한다. 역시 우리나라 선수들의 능력은 그당시에도 대단했던 것이다.
광복 이래 단계 학교마다 야구를 통한 학원 그림 제고, 사기진작 및 단합을 도모하게 되었고 고구 및 대학야구를 비롯한 실업야구팀의 활성화가 이루어졌으며, 대망의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다.
1981년 창설 준비를 시작한 한국프로야구는 서울의 ‘MBC 청룡’,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 대구의 ‘삼성 라이온즈’, 대전의 ‘OB베어즈’, 광주의 ‘해태 타이거즈’, 인천의 ‘삼미 슈퍼스타즈’ 등 송두리째 6개 팀으로 출발하였다. 1982년 3월27일 동대문 구장에서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가 개막전을 펼쳤다.
(아래 사진이 1982년 3.27 첫 프로야구 경기의 사진이다.)
오늘은 본격적인 한국야구 이야기에 미리 조금은 지루할 생령 있는 한국야구의 탄생에 대해 소개했다.
앞으로 포스팅할 많은 야구이야기들 전에 많은 사람들이 한국야구의 역사에 대해서는 한번씩 관심을 가지길 바라며 첫 포스팅을
이쯤에서 마친다.